기독교 교육의 필요성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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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교육의 필요성에 대하여...
  • 김종훈
  • 승인 2019.05.03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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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도, 교회에서도 기뻤으면 좋겠다
학교에서도, 교회에서도 기뻤으면 좋겠다

논어의 학이(學而) 편의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때때로 배우고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란 뜻이다. 과연 현시대의 학교에서 이 말이 적용될 수 있는가? 아이들은 공부하다 죽을 것 같다라고 말하거나, ‘죽을 만큼 공부가 싫다는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듣고 있다.

우리나라 공교육이 위기를 맞았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제 대안을 모색해야 할 때이다. 공교육의 위기에 대하여 온 국민이 관심을 갖고 있으며 이미 정부는 90년대 초 5.30 교육개혁 이후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신자유주의 시대에 걸 맞는 경쟁력 있는 교육 시스템을 마련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또한 오래 전부터 입시 위주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올바른 인성 교육을 위한 방안을 내놓았다. 물론 이러한 노력에 대한 결과는 조금더 지켜보아야 하겠지만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음은 인정해야 한다. 한편 지난 몇 년 간 소위 대안학교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어 오고 있으며 그 전망 또한 밝다. 기독교인 가운데도 기독교적 대안학교 운동이나 홈스쿨링 운동에 헌신한 분들이 많이 있다. 이제 우리 교회의 나아가야 할 방향은 어디일까?

 

장동민교수
장동민교수

백석대학교 기독교학부의 장동민 교수는 기독교 교육의 필요성과 대안이란 소고(小考)에서 이같이 말하고 있다.

기독교가 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해야 한다는 것은 시대적 사명이다. 학생들을 전도하기 위한 목적도 있겠지만, 기독교적인 교육만이 국가 교육을 정상화하고, 학생에게 진정한 교육을 제공할 수 있는 대안이 된다는 말이다. 혹시 어떤 분은 교회는 주일학교나 잘 운영하면 되지 공립학교 교육에 대하여 이러쿵저러쿵 말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고 반문하실 수도 있다. 그러나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교육에서 중립은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을 인정하는 교육 아니면 하나님에 적대적인 교육만이 있을 뿐이다. 주일에는 창조론을 배우고 주중에는 진화론을 배우는 정신분열적인 교육에 대하여 잠잠할 수만은 없는 것이 아닌가? 또한 교회 내에서만 머물러 있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 아니다. 이 땅의 모든 영역에 하나님의 통치권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고, 그 영역 가운데 하나가 교육제도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글에서 말하는 기독교 교육이라는 것이 주일학교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주일학교와 일반 교육은 어떤 식으로든지 관계를 맺어야 하며 기독교인은 어떤 방식으로든지 교육에 참여하여야 한다.

 

(1) 가정에서의 기독교교육

성경말씀에 따르면 자녀 교육(그것이 종교적 교육이든 직업 교육이든)에 일차적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은 부모이다. “오늘날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6:6-7)라고 부모에게 직접 명령하고 있다 사실은 종교교육에 대하여도 그 일차적 책임은 교회가 아니라 부모이다. 교회는 부모를 격려하여 자녀를 기독교적으로 양육하도록 하는 것이 일차적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부모들은 교회에 자녀를 맡겨 놓고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래서 학과교육은 국가에서 운영하는 학교가, 종교교육은 교회가, 품성교육은 가정이 담당한다고 하는 역할분담이 자연스런 현상이 되었다. 물론 전문가의 사회가 되었으니 있을 수 있는 일이겠다. 그러나 한 가지, 우리는 세 아이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한 인격을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 세 교육 담당자가 동일한 철학과 동일한 사상을 기반으로 역할을 분담한다면 이보다 더 좋은 것이 없겠으나, 서로 상반되는 기반 위에서 아이를 가르친다면 분열적인 인격이 형성될 수밖에 없다.

기독교를 믿는 부모들은 그 최고의 관심이 자녀에게 신앙을 전수하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임을 신앙으로 고백한다고 하면, 그 신앙을 자녀에게 물려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리스도 제자의 삶이 가장 의미 있는 삶이라고 하면 자녀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게 하는 것이 그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다. 자녀들의 학과 교육과 영적인 교육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

 

(2) 교회에서의 기독교교육

부모들의 연합체인 교회가 그들의 자녀를 위탁받아 가르칠 수도 있고 또 그래야 할 필요성이 있다. 주일학교가 어린이의 신앙교육을 담당해 온 것이 우리 한국교회의 오랜 전통이다. 다음 세대를 이끌고 가야 할 그리스도의 제자를 양육하는 것이 교회의 중요한 사명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우리 한국교회의 모습은 이 점에서 매우 취약하다. 초대형교회에서의 어른과 초, , 고등학생의 비율은 10:1을 밑돈다. 초대형교회의 심각한 약점 중의 하나이다. 중형교회라 할지라도 영아부에서 청년부까지의 숫자가 어른 교인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것이 추세이다. 출산율의 하락이 원인으로 지적될 수도 있으나 그것만은 아닌 듯싶다. 교회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가 현저히 낮아진 것이다.

이제는 주일학교 교육이 그 체제에서, 또한 교육의 내용에서 중대한 변화를 모색해야 하는 시점에 이르렀다. 우선 주일학교는 교회의 중심에 들어와야 한다. 국가가 인적자원을 양성하기 위하여 부총리를 필두로 하여 모든 관심을 집중시키듯이, 부모가 아이들 대학 보내기 위하여 파출부 노릇하며 과외비 마련하듯이, 교회도 그러해야 한다. 어떤 집단에서든지 교육은 이익을 창출하는 기관이 아니다.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 다른 곳에서 창출한 이익을 쏟아 붓는 곳이 되어야 한다.

교육의 내용에 대하여도 복음의 내용을 반복하고 회심을 강요하는 것으로부터 선회하여야 한다. 복음이 우리의 삶에 어떤 변화와 차이를 만들어내는지 알지 못한다면 이들이 세상과 직면하여 패배할 것이기 때문이다. 교회에 충실한 일군을 만드는 것에 만족하기 말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그리스도의 제자를 만드는 것이 우리 주일학교 교육의 비전이 되어야 한다.

 

대한민국의 위기는 교회의 위기에서 출발하고, 교회의 위기는 기독교교육의 위기로부터 시작한다. 교회가 한국사회의 등불이고, 지금의 어린 제자들이 미래 기독교의 주역이기 때문이다. 우리 조상들이 몸으로 체험하였던 기독교가 첨차 쇠퇴하여,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세대”(2:10)가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몰려온다. 이 시대의 징조를 바라보며 이 시대에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최우선이 무엇인지 점검하여야 할 것이다.

*장동민 교수는 백석대학교 기독교 학부의 역사신학 교수로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 박사과정(Ph.D., ‘역사와 신학전공)을 수료하고 현재 백석대학교회의 담임목사로 시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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